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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공지영/별들의 들판/창비/

by 아직 이른 2023.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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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별들의 들판/창비/

 

1. 별들의 들판 감동 구절



가끔씩 혼자 책상 앞에 앉아 멍해 있으면 나를 배반하지 않는 것은 글쓰기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그건 전적으로 내게 달린 일,
나의 감각을 인화해 내고 나의 경험을 완성해 주어서
내게 삶을 삶으로 명확하게 살도록 해주었으니까.
잘못되었을 경우 내 탓이라고 하면 되니까.
책임의 실체가 있고 능력의 부재가 뚜렷한 거니까.
최소한 운명이나 배신은 아닌 거니까.
그러니 이제는 알게 된 것이다
쓰는 일보다 사는 일이 더 중요한 게 아니라,
 두 개가 적어도 내 일상에 있어서는 실은 처음부터 갈라놓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말이다.
모든 인생길이 나침반처럼 이곳을 가리키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2. 인상 깊은 구절

 

 저기가 1936년 올림픽 마라톤에서 손기정이 우승했던 그 운동장이야.
그 당시 손기정 가슴에 있던 일장기를 지운 기자들 다 해고되었다는 사실 알아요?
우리 신문 친일했잖아요. 사주들 다 친일파였습니다.

그건 아는데 그 신문사 차장인 네가 그런 말을 해도 돼?
되죠, 나는 새로 입사한 후배들한테도 묻지요.
우리 신문이 친일했다고 생각하느냐고요, 아닙니다 하는 놈은 나한테 반쯤 죽어요.
기자는 하늘이 무너져도 사실에 충실해야 하거든요. 기사하고 기자는 다른 거니까요.
여자는 이제 무대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를 하고 있었다.
아이의 눈동자가 작게 흔들리더니 뜻밖에도 물기가 어렸다.
아이는 제 눈에 어리는 물기를 의식하고 얼른 고개를 돌려 광장을 바라보았다.
광장에는 늦가을이 가득 차 있었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무수히 이파리들이 떨어져 내렸다.

어떤 시인이었던가.
바람이 불지 않아도 낙엽이 떨어지는 건, 지구 한끝에서 누군가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여민아.
엄만, 그때 처음으로 살아있는 게, 여자라는 게, 신비하고 또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했어.

소리쳤지 만세다 최유정 만세! 뱃속에 든 얼굴도 모르는 나의 아기 만세!

 

어쩌면 그와 헤어진 일보다 더 힘든 것은, 누구도 영원히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진석과 수연은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듯한 친구들에게 다시는 그녀와 연관해 그의 이름을 꺼내지 못하게 하는 일이었다.

가끔씩, 왜? 하고 묻는 친구들, 그녀를 보면 그의 얼굴을 떠올려야만 한다고 믿는 친구들에게 그녀도 묻고 싶었다.
왜? 세상에 결국은 헤어지지 않는 사람이 있던가? 하고.

아마 그도 서울 어디선가 그를 만나면 그녀를 떠올려야 예의라고 믿고 있는 친구들에게 진땀을 흘리며 혹은 아주 귀찮은 어투로 이 별리를 설명하고 있으리라.
이별보다 이별 후의 이 긴 예식이 더 힘든 법이었다.
그러니 이제 그녀를 봐도 아무도 그의 이름을 꺼내지 않게 되면 그때 긴 이별은 완성될 것이었다

 

어린 시절 독일의 천장을 올려다보던 시간들이 기억나지 않듯이.
기억은 있는데 감정은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기억만 남고 박제된 채 기억만 남고, 끝내는 그 기억도 사라지면 그땐 다른 이들에게 자기의 생의 시원을 물어보려 이렇게 먼 길을 떠나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생은 자신의 것일까?
얽힌 퍼즐을 맞추는 기분도 있었다
그 퍼즐이 살아 있어서 소리치고 얽히고 살이 떼어지는 것처럼 아파한다는 것 말고는 그랬다.
헤아려 보니 그때 엄마의 나이가 아마 지금 자신의 나이, 스물아홉이었다.

병에 꽂아뒀더니 글쎄 사과꽃이 피잖아.
쓰레기 버리러 가다 주운 가지일 뿐인데. 그래서 내가 사과를 한 알 그 곁에 가져다 놓았어
왜 사과를 그 곁에?
저 사과는 저 사과나무 가지의 꿈이잖아.
쓰레기 더미에 묻혀서 사라질 뻔한 꿈.

네가 생겨났을 때 꿈을 기억하라고 말해주고 싶었어 모두가 생겨나는 데는 이유가 있을 테니까 말이야. 

 

 

3.느낌

 

 

어째서 사랑이 영원하다고 믿었을까. 우리는 사소한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평생을 그것을 배우며 살아간다.

그런데도 형체도 없는 바람 같은 사랑이 영원할 수 있을 거라 착각했을까.

영원하지 않은 것을 대하는 것은 미련이 아니라 정리 일 것이다.

매일 예쁘게 이불을 각 잡아 정리하듯이

사랑도 끝날 때가 되면,

일어날 시간이 되면

그만 자리를 털고 일어나 정리를 시작해야 한다.

일 년이 걸릴지 더 시간이 걸릴지 모르는 정리를 조용히 스스로 말이다.

내겐 그런 시간들이 부족했다.

영원한 게 왜 되지 못했어? 반감만 가지고 꿈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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